고린도 후서 3장
우리의 편지인 여러분
1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시 추천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다른 어떤 사람들처럼 여러분에게 추천장을 보내거나 여러분에게서 추천장 을 받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2 여러분은 우리 마음에 기록되어 있고 모든 사람이 알고 읽는 우리의 편지입니다. 3 그리고 여러분은 우리 사역의 결과로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이 편지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령으로 쓴 것이며 돌판에 새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새겨진 것입니다. 4 우리는 이와 같은 확신을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갖게 된 것입니다. 5 우리는 무슨 일이나 우리 자신이 하는 것처럼 생각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 능력(만족)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1.바울사도는 외관상 자천(自薦)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변명을 한다. 천거서/추천장은 1 세기의 관행으로 예루살렘 밖에서 전도하는 자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천거서를 받아야 했다. 천거서는 어떤 사람의 직분과 권한에 대한 위임장 또는 신임장 역할을 하였다(행 9:2;18:27;고전 16:3, 10). 이러한 관례를 들어 바울이 천거서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은 적대자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2. 바울에게는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편지 즉 천거서라고 바울은 말한다( 복음으로 성도들을 낳았기에-고전 4:15)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편지/천거서는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쓰여진 것이다(렘 31:33).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회심하도록 한 것은 성령이다(표징이 나타남(고후 12:12) 그리스도의 증인(행 1:8) 마음-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종교적 중심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3. 그리스도의 편지-(에피스톨레 크리스투)에서 '그리스도의'는 표면상 소유격이지만 실제로는 주격의 의미를 갖는다. 즉 고린도 교인들 자체가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라는 점을 말해준다(R.Martin). 5. 생각하여- 바울의 만족은 인간의 능력으로 생각하여 성취된 그러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만족이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사도는 하나님께 모든 찬양을 돌리고 있다. 사도직을 행함은 자기 자신의 성결이나 재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능력을 통한 것이다. 만사가 주에게서 나오며(롬 11:36) 성도들이 가진 것은 모두 주에게서 받은 것이다(고전 4:7)
Q1- 고린도후서의 상당히 많은 분량(1-7, 10-13 장)이 바울 자신의 사도권을 변증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Q2-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 쓴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새 영광-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
6 하나님은 우리를 새 계약의 일꾼으로 삼으셨는데 율법의 종이 아니라 성령님의 종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율법은 죽음을 가져오지만 성령님은 생명을 주십니다. 7 모세가 돌에 새긴 율법을 받을 때 그의 얼굴에는 밝은 광채가 났습니다. 곧 사라지긴 했지만 그 광채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을 가져오는 율법의 직분도 그처럼 영광스럽다면 8 성령님이 주시는 생명의 직분은 더욱 영광스럽지 않겠습니까?9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직분이 영광스럽다면 사람을 의롭게 하는 직분은 더욱 영광스러운 것입니다.10 이런 점에서 과거에 영광스러웠던 것이 이제는 그보다 더 나은 영광 때문에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11 없어질 것도 영광스러웠다면 영원히 있을 것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습니까!
6. '의문'(그람마)은 본래 알파벳의 '문자'를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점차 `기록된 것' 즉 '문서'나 '책'을 의미하는 말로 발전되었다. 이 말이 본문에서 뜻하는 바는 '율법'이라고 할 수있다. 사도는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의 차이점을 대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서 자신과 자신의 동역자들을 평가하고 있다. 즉 하나님이 그들을 새 언약의 유능한 사역자들로 만들어 주셨다. 7 모세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의 잔영이 있었음(출 34:29). 8. 새언약은 훨씬 더 고상한 것으로 9. 의'(디카이오쉬네스)의 개념은 바울이 그 말을 사용할 때의 용법에 비추어 이해해야 하는 바, 윤리적인 무죄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관계의 성립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에 기인한다(Barrett). 의의 직분 속에는 그것을 부여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현존하는 것이다(Kasemann). 새 언약의 법은 '살리는 직분'이다. 율법은 '정죄하는 직분'이었으나 복음은 '의롭게 하는 직분'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용서와 영생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를 보여 준다. 율법과 복음의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차이, 율법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을 변화시킨 복음의 비밀은 바로 생명을 주는 것이었습니다.-새언약의 일꾼의 직분은 생명의 직분, 영의 직분, 영광의 직분-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직분을 영광이 넘치는 직분이라고 주장한 것은 복음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기에게 직분을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런 신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것은 매우 영광된 신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복음을 전함(롬 1:17). 주님의 의는 영원토록 있을 것임(고후 9:9)
Q3-새계약의 일꾼이 일은 무엇이고 그것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Q4-새계약의 일꾼으로 영광을 느끼고 체험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새 영광-복음 사역자와 성도의 유익
12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희망이 있기 때문에 아주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13 모세는 자기 얼굴에서 광채가 사라지는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가렸으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14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은 둔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옛 계약의 말씀을 읽을 때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데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입니다.15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 수건이 그들의 마음을 덮고 있습니다.16 그러나 언제든지 주님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질 것입니다.17 주님은 영이시므로 주님이 계시는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18 그래서 우리가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듯이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되면 점점 더한 영광으로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 영광은 영이신 주님에게서 나옵니다.
12. '담대히'- 헬라어'파르레시아'는 원래 '말을 함에 있어서의 솔직함' 또는 정직함'을 뜻하였으나, 말 뿐만 아니라 행동에 있어서의 '솔직함'을 의미하게 되었다. 사역자들의 의무는 아주 명확하게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은 율법보다 더 명확한 계시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끝까지' 주목할 수 없었으나 우리는 하게 될 것이다. 14. '수건'( 칼륌마)은 유대인의 영적 무지와 오해, 예수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불신앙, 사랑이 상실된 편견과 엄격한 율법주의적 편견 등을 상징한다. 15`마음' (카르디아)은 지적 활동의 중심이며 인간의 인격과 애정이 자리잡는 곳이다. 16 주'(퀴리오스)는 과거 모세가 섬겼던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현재 모든 사람을 당신께로 초청하시는 동일하신 주님이시다. '돌아가면'( 에피스트렙세)은 '돌이키다', '회개하다'(회심의 의미)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17. 복음을 믿는 성도들은 자유함과 광명을 누리게 된다.
Q5-마음을 덮고 있는 수건에 대한 이해와 혹 자신의 마음을 덮고 있는 수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Q6-성도의 유익으로 자유를 누리는 것에 대한 이해와 적용은?
Q7-본장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받은 말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