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5장(화목케 하는 직분)
개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16절에서 비록 ‘겉 사람은 낡아지나’ 그의 속이 ‘날로 새로워’지고 있기 때문에 낙심 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외부적으로 겪고 있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 어려움들은 그가 장차 경험하게 될 영원한 영광의 무게와 비교해 본다면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 환난을 당하고 있더라도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영광을 바라보며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소망으로 인하여서 지금까 지 큰 환난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과 겸손함으로 복음을 전했다고 고백합니 다. 자기가 그처럼 희생적으로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되었기 때문이 라고 말합니다.
1. 그리스도인의 확실한 소망 (5:1-10)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 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 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 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 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 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 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절: 땅에서 무너질 수 있는 유한한 인생을 비유한 ‘장막 집’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과 서로 대 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2-4절: ‘탄식하며(2절) / 탄식하는 것(4절)’(스테나조멘)은 ‘슬퍼하다’, ‘갈망하다’, ‘탄식하다’, ‘한숨짓다’등의 뜻을 가 지고 있다. 이 땅에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해서 이생에서의 삶을 끝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 운 신령한 몸을 입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표현한 것이다(Martin) / ‘벗은 자’(귐노이)라는 말은 육체를 떠난 영이라 고 보고, 바울은 성도들이 죽을 때 그리스도와 분리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도들의 죽음은 곧바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8절) 5절: 환난 가운데 탄식하며 있을 때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나라에 대한 희망을 통해 우리가 위로를 받게 되는데 그러 한 일은 성령을 통해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이야기 합니다. 모든 것이 다 허물어지고, 생명에 위협을 받을 만큼 어려운 상황 가운데 처하게 될 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을 그냥 두시지 않기에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허락해 주십니다. 6-17절: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방언의 한계성과 무익성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방언은 마치 헬라어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회에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7-9절: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이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어떠한 다른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 아가는지 두 가지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7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실의 많은 문제 앞에서 보이는 것에 집착하며 이기심과 물질에 목을 매는 어리석음을 범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보이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성령께 서 우리가 바라 볼 수 있도록 허락하신 영원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가지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전능 하신 손, 능치 못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손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믿으며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그 어려움 을 당당히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8-9절) 환경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때로는 조금이라도 빨리 이 세상에 서의 삶을 마치고 주님과 영원한 나라에서 안식 하며 평안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 시간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살도록 허락하신 시간에는 최선을 다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로 힘 써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10절: 우리는 마지막의 때에 한편으로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기쁨과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 앞 에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보였던 행동과 했던 말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심판은 죽음으로 이 세상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죽음의 시작이 되지만 죽음 너머에 영원한 삶이 있음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 들에게는 영원한 삶의 시작이 됩니다.
질문 1. 어려움을 겪게 될 때 현실의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게 된 경우가 있다면 이야기 해 봅시다.(7절) 질문 2.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서 허락된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 각해 봅시다.(10절)
2. 화해의 메시지 (5:11-21)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 라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 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 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 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 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0절: ‘주의 두려우심’(에이도테스 운 톤 포본)이란 앞절에 말한 대로 마지막 날에 선악간에 심판자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향해 서 모든 성도가 마땅히 가져야 하는 ‘경건한 긴장감, 두려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다’는 말은 사도 바울 일행이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애쓰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뜻이다. ‘너희의 양심에도 알려졌기를 바란 다’는 말은 사도 바울의 진실한 삶이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알려졌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나 진실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12절: 바울은 이렇게 자기를 변호하는 편지를 쓰는 것이 자신을 고린도 교회 앞에 다시 추천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거짓 교사들 앞에서 그가 진실한 종임을 자랑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말한다.13-14절: 열심 있는 성도가 미친 것같이 보여도 실상 그는 미친 것이 아니다. 성도는 결코 미쳐서는 안 된다. 온전한 정신은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정신이다. 기독교는 비정상적이거나 비상식적인 종교가 아니다. 정상적인 인격은 바른 정신을 가진다. 성도의 미친 것 같은 열심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함 때문이다. 성도는 그 사랑 때문에 핍박 중에도 낙심하거나 굴복 하지 않고, 홀로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으며, 물질적 가난과 궁핍 속에서도 위축되거나 그 처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주의 일에 열심히 충성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십자가 대속의 사랑이다. 그것은 한 사람이신 예수께서 모든 사람 을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 죽으신 사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희생적 사랑이다. 15절: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는 것은 죄짓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의롭고 선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성도 의 삶의 목표이다.16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이제부터 우리는 사람을 육체대로 알아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 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이 된 자들, 곧 그가 매우 귀하게 여기신 자들이다. 17절: 구원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다. 이전의 것들, 곧 죄악된 것들, 정죄된 것들, 허무한 것들이 다 지 나갔기 때문이다. ‘보라, 새것이 되었다’는 말은 전통사본에는 ‘보라, 모든 것들이 새롭게 되었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제 그에게 있는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 그는 새 생명 곧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을 상속받 을 자가 되었다. 이제 그는 과거의 그가 아니다. 그의 삶의 의미와 가치는 완전히 새로워졌다. 18-20절: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뿐 아니라 또한 세상을 자기와 화목케 하셨다.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 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일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다른 말로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케 하셨을 뿐 아니라 또한 그들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화목케 하는 직분을 주셨고 화목케 하는 말씀을 부탁하셨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화목케 하는 말씀이다. 여기에 교회의 사명이 있다. 따라서 전도자들은 ‘그리스도를 대 신한 사신(使臣)’이다. 고린도교회 내에도 하나님과의 화목이 필요한 자들이 있었다. 모든자가 구원받은 자가 아니기 때문에 화목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 곧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며 원수된 자들을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일을 위해 목사들과 전도자들을 온 세상에 파송하시는 것이다. 21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고, 우리가 받아야 할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다.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그의 속죄의 죽음 때문에, 우리 는 그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롬 3:24). 이것이 대속에 근거한 구원이다.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씻음과 의 롭다 하심을 얻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 우리는 이 화목의 소식을 세상 끝까지 전해야 한다.
질문 3. 그리스도의 강권하는 사랑이 나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 질문 4.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판단기준은 무엇입니까? 질문 5. 은혜받은 말씀/도전되는 말씀은 무엇인가? 5장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사랑을 감사하자. 한 사람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으셨다. 이 일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었다(요 3:16; 롬 5:8; 요일 4:9-10).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얻었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목적은 분 명하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8에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 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말하였다.
셋째로, 죄인들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하고 우리는 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한다. 죄사함과 화목의 결과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참 평안을 누리며 담대히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롬 5:1-2; 히 4:16).